이 이야기에는 시작이란 게 없어. 책장은 모래로 무너져 내리고, 우리가 배웠던 그리고 번갈아 잊어버린 언어를 다시 한 번 익힌다. 쓰레기 같은 티브이 화면에 비치는 쇼킹한 한 장면 같은 거지. 노이즈 낀 화면을 찡그리고 보면 의미를 읽어낼 수도 있어. 선명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안테나를 계속 늘여놓도록 해. 우리는 전파를 잡아야 해, 하늘의 메시지여,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지 알려줘. 내일이 어떻게 될지 난 알 수 없으니까. 그러니 여러 가능성으로 충만한 셈이기도 하지. 내가 아는 거라곤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나아진다는 것뿐. 홀가분해지는 기분이야, 내 목소리가 커지는걸!

그러니 마이클, 녹음 테이프를 계속 돌려줘. 친구들, 우리 기타를 계속 치자. 우리의 실패를 기록으로 남겨야 해. 그래 우리의 사랑을 기록해둬야만 해. 난 침묵 속에 너무 오래 잠겨 있었어. 고통 속에서 너무 자라버리고 말았어. 인간의 허물을 벗고, 거듭나는 일, 그건 알을 부수고 나오며 시작되는 거야. 그러니 친구들아 우리가 함께한 시간에 감사한다. 내 사랑은 햇빛과 공기처럼 너희 곁에 머물 거야. 오, 여기서 계속 지낼 수 있다면 나도 정말 좋겠어, 허나 내 은총이 날 뒤덮고 있어. 나는 곧 사라지리라.

이건 영화가 아냐, 시사회도 아니고. 이런 역할극, 그래 난 이걸 삶이라고 불러. 그건 분수* 같은 거야, 문이 열렸어. 이 문제에는 답이 없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밖에.

그래 난 낙엽을 이해하게 됐어. 나 자신의 육신에서 그들과 같은 운명을 보았어. 하지만 이 꿈에서 깨어나 나를 낳아준 곳으로 돌아갈 때 난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이야기는 계속되고 계속되고 또 계속된다…….


*cf. Nozick, Robert, Philosophical Explanations,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1981, pp. 571-574. 구글 북스(새창)



Bright Eyes - Method Acting,
Lifted or The Story Is In The Soil, Keep Your Ear To The Ground, 2002, #2.


브라이트 아이즈 최고의 앨범 중에서 단연 최고의 트랙. 제목은 메소드 연기(영문 위키백과, 새창)이지만, 전반적으로도 그렇듯, 본문에서는 그냥 '역할극'으로 의역했다. 사실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오버하자면, 개인(내러티브) 정체성, 외재적 초월(참고로 노직은 내재적 초월을 주장했다), 유한성의 인식, 윤회전생-_- 뭐 이딴 것들이 섞여 있는 가사. 물론 그런 걸 떠나 일단 노래가 좋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소절은 '마이클, 녹음 테이프를 계속 돌려줘'와 '그래 난 낙엽을 이해하게 됐어' 부분이다. 뭔가 쥰내 있어 보임.

전에 세상의 중심(새창)이란 곡도 번역한 적이 있는데, 이것도 좋다. 다음 주에도 브라이트 아이즈 곡 번역 예정.


Posted by 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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